앙쥬가 만난 사람우리 아이 성교육, 어렵지 않아요

하루가 멀다 하고 미디어에서는 성범죄 뉴스가 쏟아진다. 최근에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 ‘미투(Me too)’가 활발해지면서 성범죄 예방, 나아가 성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이에게는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까? 성교육 전문가이자 관계교육연구소의 손경이 소장에게 성교육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물었다.

엄마, 아들의 성(性)에 눈뜨다

매스컴을 통해 들리는 각종 성범죄와 이성 혐오, 성차별이 뿌리 깊게 박힌 요즘 성교육의 필요성도 덩달아 급부상 중이다. 이러한 부모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육아서 분야에서도 성교육 관련 도서가 눈에 띈다. 그중 주목받는 책은 성교육 전문가이자 관계교육연구소 손경이 소장의 첫 단행본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알아야 할 내용과 손 소장이 외아들을 키우며 터득한 성교육 지침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손 소장은 지난 3월 tvN <어쩌다 어른> ‘위드유 특집’에 출연해 미투 운동과 디지털 성범죄를 주제로 강연을 펼쳐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유쾌한 말솜씨와 알기 쉬운 사례를 더해 이해도를 높였다. 17년째 성교육 전문가로 현장에서 뛰고 있는 손경이 소장이 지금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덕분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같은 반 여자친구 때문에 알림장도 제대로 써오지 않고 교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목격한 적 있어요. ‘우리 아들이 이성에 눈을 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기대, 두려움 등 여러 감정이 들었죠. 동네에 있는 구청에서 부모 교육을 받으며 성교육을 처음 접했어요. 수업을 통해 배운 것과 책을 보고 독학한 것들을 차근차근 아들에게 알려줬죠. 이성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은 왜 해서는 안 되는지 등 일종의 연애 코치를 해준 셈이에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남편과 다르게 아들을 좋은 남자로 키워야겠다는 다짐으로 성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은 아들과의 진솔한 대화였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아이의 생각과 의견을 물었다. 꾸준한 소통 덕분에 모자는 지금도 하루에도 여러 차례 안부 전화를 나누고 성에 대해 허물없이 이야기한다.

21세기형 성교육

흔히 성교육이라고 하면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정자와 동그란 핵처럼 생긴 난자가 만나 임신을 하고 출산까지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물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성’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대가 변하고 성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인 차이와 임신, 출산 등에 관한 지식을 배 우는 것만으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각종 성범죄, 성과 관련된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손경이 소장은 성차별과 이성 혐오, 빈번하게 발생하는 성희롱과 성폭력 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성을 둘러싼 모든 것을 가르치는 넓은 의미의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학교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임신을 하고 출산하는 과정만 가르치지만 실제로는 피임으로 인해 정자와 난자가 만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잖아요. 남녀가 임신 계획이 없다면 정자와 난자를 만나게 하면 안 된다는 점,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다는 점 등을 함께 가르쳐야 하죠. 이와 함께 자신이 원치 않을 때는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과 상대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자세도 길러줘야 해요. 성 의식과 성 평등은 단순히 성에 대한 지식을 배운다고 길러지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부모를 통해 꾸준히 보고 배우면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죠.”

손 소장은 성 의식과 평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성교육은 ‘관계’에 대한 교육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 교육의 일환으로 지속적이고 일관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모가 성 지식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전문가만큼 알 필요는 없다. 만약 모르는 부분을 아이가 물어온다면 엄마 아빠도 스스로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아이와 함께 알아가면 된다.

자기 몸에 대한 인식,
내 몸은 내 것이라는 생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부모와 꾸준히 대화를 하고,
부모가 아이의 몸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 등을
통해 자신은 물론 타인의 몸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답니다.

성교육, 일상에서 출발하라

성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한 순간들이 많다. 아이의 질문 한 마디에 진땀을 빼기도 하고, 섣불리 알려줬다 성에 일찍 눈이 뜨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손경이 소장이 생각하는 성교육의 적기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다.

“자기 몸에 대한 인식, 내 몸은 내 것이라는 생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게 아니에요. 부모와 꾸준히 대화를 하고, 부모가 아이의 몸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 등을 통해 자신은 물론 타인의 몸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답니다.”

손 소장이 제안하는 방식은 이른바 ‘몸교육’이다. 갓난아이에게 자기 몸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것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성교육을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를 씻길 때 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따뜻한 물로 코도 닦고, 눈도 닦자. 이도 닦아볼까? 치카치카’ 이런 식으로요. 아직 말귀를 못 알아듣는 갓난아기 때부터 시작하는 게 좋은데요. 가령 기저귀를 갈 때는 ‘우리 ??이 쉬했네. 축축했겠구나. 엄마가 기저귀 얼른 갈아줄게’ 하거나 ‘우리 ??가 밥을 잘 먹어서 정말 예쁘다. 뽀뽀해도 될까?’라고 허락을 구하는 표현도 모두 성교육에 해당합니다.”

간혹 어린아이에게 일찍 성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성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아이의 성장 단계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역효과다. 손 소장은 지레짐작으로 성교육을 하기보다 아이와 대화를 통해 단계별로 접근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아이가 먼저 질문을 하면 부모가 대답을 해주고 다시 부모가 질문하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좋아요. 이른바 ‘핑퐁 대화’라고 하죠. 아이가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라고 물어본다면 ‘엄마와 아빠가 서로 사랑해서 낳은 거야. ??는 그게 왜 궁금했어?’라고 되묻는 식입니다. 만약 아이가 물었을 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면 솔직히 밝히세요. ‘엄마도 잘 모를 수 있어. 우리 같이 찾아볼까?’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아이와의 대화를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이다. 성에 대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의 마음을 열어두자. 훗날 아이가 커서 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가 찾아올 때 언제든 부담 없이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말이다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성교육하는 법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신의 신체를 인식하고 남자와 여자의 몸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궁금한 것도 많고 부모를 당황하게 만드는 말을 늘어놓기도 하는데 이 때 부모들은 자주 실수를 한다. ‘넌 몰라도 돼’라고 하거나 ‘크면 다 알게 될 거야’라는 식으로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이다.

“그런 대답은 아이와의 대화를 단절해버리는 결과밖에 안 돼요. 앞서 말했듯 잘 모르거나 설명하기 부끄럽다면 이를 솔직하게 얘기하고 아이와 같이 답을 찾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는 정확한 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엄마 아빠와 얘기를 나누고 싶은 거니까요,”

성기의 명칭을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고추’, ‘잠지’ 등 유아 수준의 언어를 계속 사용하면 아이 또한 자기 몸의 정확한 명칭과 기능을 알기 어렵고, 부끄럽고 감춰야 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만 3세가 넘어가면서 성기를 만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는 부모들도 종종 있어요. 하지만 이 시기의 자위행위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부족하거나 목욕, 꽉 끼는 옷 등으로 자주 자극될 때 나타나곤 합니다. 청소년이나 성인과는 다르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게 좋아요. 이때 ‘더러워, 손 씻어!’ ‘거기 자주 만지면 벌레 나온다!’는 식으로 윽박지르면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성기는 중요하며 자주 만지면 병균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장난감이나 감각 놀이로 아이의 관심을 돌리세요. 자라면서 흔히 발생하는 현상이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부모의 관심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명심하세요.”

성교육을 할 때는 아이의 결정권을 존중해줘야 한다.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 들어준다. 뽀뽀를 하거나 안을 때도 먼저 물어보고 동의를 구한 다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넓게 보면 이는 아동 성폭력 문제와도 연관돼 있어요. 아동 성추행범들은 ‘너 참 예쁘다. 나랑 같이 갈래?’ 라는 말로 아이를 유인하면서 몸에 손대는 경우가 많은데,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게 익숙한 아이라면 잘못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어요. 성과 관련된 문제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참 많죠. 자기 결정권을 존중받아온 아이라면 이때 올바른 선택,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답니다.”

아이에게 올바른 성 인식을 길러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 나아가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성 전문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아이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관찰, 대화만 있다면 성교육,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
손경이 저, [다산에듀]

낯 뜨겁고 부끄럽게만 여겼던 성교육을 친절하고 알기 쉽게 설명한 성교육 가이드. 저자가 17년 동안 현장에서 접한 사례와 자신의 사례를 통해 검증된 처방을 제시한다. 성에 대한 솔직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과 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면 추천한다.

 

프로젝트 [호제] 2018년 앙쥬 8월호
에디터 류신애 포토그래퍼 진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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